‘전향’을 통해 파룬궁수련 단체에 행한 정신과 육체 파멸에 대한 조사보고

2004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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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거의 5년 동안 지속된 중국 파룬궁(法輪功)수련생에 대한 박해에서 장쩌민 집단은 파룬궁수련생들에 대한 처리는 그들의 신앙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법률을 위반했기 때문이라고 선포했다. 2000년 4월 6일 중앙 ‘610사무실’ 책임자인 류징은 중국을 대표하여 유엔 인권위원회 제 56차 회의에서 파룬궁문제에 답변했다. 중국정부는 대부분의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보호와 설득 교육하는 정책을 취했다.”면서 “지금 극소수, 여전히 파룬궁에 미련을 둔 사람에 대해, 각종 방식으로 성의를 다해 설득, 교육하는 정책을 취했으며, 중국에서 법으로 처벌한 사람은 사교를 이용하여 형사법을 위반한 범죄자들이다.”[1] 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설득 교육’이 ‘성의를 다 하든’ 아니면 ‘만 볼트 전기곤봉’이든 간에 모두 인류의 가장 기본적 권리인 ‘신앙자유’를 공공연히 침해한 것이다. 동시에 이런 ‘설득 교육’은 또 중국의 현행 헌법과 법률을 공공연히 무시하고 계통적으로 파괴한 것이다. 류징(劉京)이 재직한 위 ‘610사무실’이 바로 장쩌민이 파룬궁을 전문적으로 탄압하기 위해 설립한 특수 기구로서, 이번 탄압은 신앙에 대한 박해이며 중국 당국이 공개적으로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전향’을 자랑한 것임을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전향’은 중국관방이 전문 사용하는 용어로, 국제상에서는 보통 ‘세뇌’라고 부른다. 이 보고에서 제공한 증거는 현행 법률을 밝힌 것이 아니라 박해에 관건적 작용을 일으킨 ‘전향률’을 밝힌 것이다.

. ‘전향’ 명령은 최고위층에서 내린 것이며 층층이 그 임무가 전달되었다

1. ‘전향’에 관한 중앙 문건

‘전향’ 명령은 최고위층에서 내린 것이다. 1999년 7월 20일을 전후에 내려온 일련의 문건 통지는 파룬궁에 대한 탄압이 정식으로 시작 됐음을 알리는 상징이다. “공산당원은 ‘파룬따파’를 수련해서는 안 된다는 중공중앙의 통지”(이하 ‘통지’로 약칭함)는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문건이다. 이 ‘통지’에는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는 당원에 대해 전향 공작을 잘하라.”고 제기하고 아울러 “주동적으로 ‘파룬궁’ 조직을 이탈하고, 사상적으로 파룬궁과 경계선을 긋고, ‘파룬궁’ 문제를 폭로해야 한다.”[2] 라는 구체적인 전향 표준을 설명했다.

8월 6일 중공중앙판공청(辦公厅)은 ‘공산당원이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등 문제에 관한 중공중앙기율검사위원회, 중공중앙조직부의 약간의 처리 의견’을 전재하고 ‘통지’에서 나온 전향을 비롯한 내용에 구체적인 규정과 해석[3]을 달았다. 위 두 문건은 공산당원에게만 국한된 것이다.

8월 24일 신화사는 중공중앙판공청, 국무원판공청 통지(두개 청의 통지)를 발표해 “진일보 절대다수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교육에 의한 전향과 해탈 공작을 잘 할 것”[4]을 요구했다.

‘두개 청의 통지’ 내용은 ‘통지’와 비슷하나, 모든 파룬궁 수련자로 그 대상이 확대되었다. 여기에서 처음으로 “절대 다수 ‘파룬궁’수련자에 대한 교육 전향과 해탈 공작이 이번 투쟁 성과와 투쟁승리를 이룰 수 있는 중요한 상징”이라고 언급했다.

이 세 문건 중에서 파룬궁 수련자를 ‘일반 수련자, 핵심인물과 극히 적은 막후 조직 획책’ 3부류로 나눴다. 설사 “단지 건강을 위해 ‘파룬궁’을 연습하는 사람”일지라도 ’정확하게 인식‘하지 않으면 즉 신앙을 포기하지 않으면 ‘해탈’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로부터 이번 박해는 처음부터 전체 파룬궁수련자의 신앙을 겨냥한 것임을 가히 보아낼 수 있다. 그때로부터 ‘전향’은 이번 탄압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되었으며 전반 탄압 과정을 주도했다. ‘전향’은 임무로  되어 위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당과 정부의 직능 기구를 통해 층층이 아래로 하달되었다.

2. 사법 계통 문건

2001년 1월 16일에서 18일까지 사법부장 장푸썬은 전국 사법청(국)장 회의에서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전향교육 ’에 대한 공작을 배치했다.[5]

2001년 4월 25일 중공중앙 조직부는 랴오닝성 마싼자(馬三家) 노동교양원 당위원회, 베이징 노동교육국 당위원회와 헤이룽장성 치타이허(七臺河) 시위원회에서 ‘파룬궁’과 투쟁한 경험을 자료로 인쇄해 발행했다. 그 중에서 가장 주요한 내용이 바로 ‘전향’ 부분[6]이었다.

내몽골 사법 계통은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전향 공작’을 중대한 정치 임무로 삼아 ‘노동교양 공작’에서 특별한 위치[7]에 두었다.

저장성 정부는 2002년도 성 정부 직속부문 공작책임제 목표에서 불법적으로 노동교양 시킨 파룬궁수련생의 ‘전향률’을 성 사법청의 중요 목표[8]로 삼았고,

안후이성 사법청은 2003년 중요 공작 임무 분해 방안에 ‘파룬궁’ 수련인들에 대한 ‘전향공작’과 진일보 ‘전향률’을 높이는 임무를 노동교양 관리국 책임자에게 주어 집행[9]하게 했다.

3. , 시 하부조직 정부 문건

위 사법 부문 이외에 정부 행정 부문도 구체적인 임무가 있었다. 후베이성 문명 지역사회 건설 임시 시행 관리방법, 장시 난창(南昌) 둥후(東湖)구 ‘문명 지역사회 공정’ 실시 방안에는 문명 지역사회에 부합되는 표준에 모두 “지역사회 내 ‘파룬궁’ 수련자 젼향률이 100%‘[10, 11]에 달해야 된다.”는 내용이 포함 되어있고

닝샤 회족자치구는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전향’ 공작 중에서 “지도자가 핵심인물을 책임지고, 조직은 중점대상을 책임지고, 당원은 군중의 힘을 비는 도우미교육(幫教) 책임제를 실시하게”[12]하고

우한 시위 정치법률위원회(시 사회치안종합관리위원회사무실)는 2003년도 반드시 도달해야 할 공작목표에 “전년도를 기준으로 하여 ‘파룬궁’ 수련자 ‘전향률’과 확고률이 45% 이상에 달해야 한다.”[13]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중공 톈진 허시(河西)구 둥하이(東海)가도(街道)는 주민센터, 파출소, 중점 대상 소재 직장 세 곳에서 ‘삼위 일체’ ‘도우미교육(幫教) 전향’ 감시 공작 시스템을 실시하여 ‘책임 보증 책임제’를 현실화 하고, 지도자가 지역을 책임지고, 과장이 거점을 책임지고, 거민위원회 당지부서기, 지역 민경은 사람을 책임지는 네트워크 조직을 만들었다.

‘도우미교육(幫教)’ 소조는 당 노동운동위원회와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도우미교육 책임서’를 체결하고 주민센터, 사무소, 직장과 ‘공동으로 파룬궁 중점 대상에 대한 교육전향 감시통제 공작을 잘 할 수 있는 협의서’[14]를 체결했다.

장수성 징장(靖江)시는 ‘지도자 책임제, 공작 책임제, 책임 추궁제를 통해 집중적으로 세뇌반을 조직하고, 병원에 보내 치료하게 하고, 전문인원이 감시통제하는 조치를 취해 층층이 ‘전향과 방지와 통제 공작’ [15]을 현실화했다.’

난징시 치샤(棲霞)구 마췬(馬群) 주민센터는 하부조직과 ‘네 명이 한 명을 맡는’ 책임서를 체결하고, 책임 금액을 납부했다. 공작 중점은 ‘전향’[16]에 두었다. 상술한 층층책임제를 통해 중앙 최고위층인 장쩌민 개인의 박해 의지가 이렇게 ‘전향’을 통해 구체적으로 하부조직에까지  수행되었다.

4. 중앙은 전면적으로 폭력을 사용하여 ‘전향’시키기로 결정

‘전향’은 발전과정을 겪었다. 조기의 ‘전향’은 몇 가지 박해 수단 중의 하나로써 진행되었다. 중국대륙 정부 문건과 매체 보도는, 박해는 공개적으로 연공하고, 베이징에 청원하러 간 사람들에 대한 징벌에 집중했다고 했다.

그 중 비교적 전형적인 것은 ‘월스트리트저널’ 기자 IANJOHNSON이 산둥성 웨이팡(濰坊)시 천즈슈(陳子秀)가 베이징에 상방(上訪)하러 간 이유 때문에 박해 받아 사망한 것을 대표로 한 시리즈보도[17]이다.

그런 정황에서 천쯔슈가 고문으로 사망한 직접적 원인은 파룬궁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1년 1월 23일 당국이 연출한 ‘천안문광장 분신자살 사건’ 이후[18] 당국은 파룬궁 수련자들의 정신과 육체를 소멸하는 주요 무기로 ‘전향’이란 방법을 사용했다.

그 조작도 점차 체계화 되었다. 한 중국관리가 ‘워싱턴포스터’에 밝힌 것처럼 조기 탄압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2001년에 이르러 ‘효과적인’ 방법이 형성됐다. 이 효과적인 방법은 세 방면을 포괄한다. 즉 폭력, 고압 선전과 ‘세뇌’인데 그 중 ‘세뇌’가 관건이다. 이 관원은, 탄압이 시작됐을 때부터 폭력을 썼지만 올해(2001년)에 이르러서야 중앙에서 폭력을 널리 사용하라고 격려했다고 말했다. 정부 보고에 따르면 파룬궁수련생은 폭력을 쓰지 않은 상황에서 파룬궁을 포기한 사람이  극히 적었다. 천안문에서 12살 여자아이(류쓰잉)의 불에 탄 신체와 다른 사람이 “그들은 ‘분신자살’하면 ‘승천’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한 매체 인터뷰 영상을 반복적으로 방송하는 것을 통해, 이런 고압 적인 선전으로 최종적으로 많은 중국인이 정부 말을 믿게 했다. 마지막 방법은 강제로 ‘세뇌반’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이 3가지 방법은 하나도 적어서는 안 된다.[19]

. ‘전향’은 전체 파룬궁수련생 신앙에 대한 박해

1. 박해는 전체 파룬궁수련생을 겨냥

‘양판(两办: 두 판공청) 통지’에는 ‘교육 전향과 해탈공작’ 대상은 “절대 다수 ‘파룬궁’수련자”라고 언급했고, 거기에 ‘일반 핵심인물’ 심지어 ‘엄중한 착오가 있는 핵심인물’이라고 했다. ‘전향’ 대상은 사실 전체 파룬궁수련생[4]이었다. ‘반드시 법에 따라 처벌해야 할’ ‘극소수 막후 조직 획책 핵심인물’도 ‘전향’시킬 상대로 되는데 단지 ‘해탈’ 될 수 없을 뿐이다. 이점은 각지 정부에서 요구한 ‘전향률’ 완성은 모두 현지 전체 파룬궁수련생을 기본 숫자로 계산[10, 11, 12]하는 것에서 보아낼 수 있다.

2. 장쩌민 본인이 신앙 박해 범위를 결정하다.

‘전향’이란 파룬궁수련생을 강박하여 신앙을 포기하게 하는 것이다. 사실 장쩌민 집단은 처음부터 파룬궁 문제를 신앙 문제로 삼아 처리했다. 1999년 4월 25일 저녁 즉 파룬궁수련생 만 명이 청원하러 가던 날 저녁, 장쩌민은 정치국상무위원과 기타 관련된 지도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 공산당원이 신앙하고 있는 유물론, 무신론, 즉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 파룬궁이 선양(宣揚)하는 그런 것을 싸워 이기지 못한 단 말인가? 정말 그러하다면 그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 아닌가!”[20]라고 썼다.

여기에서 장쩌민 본인이, 파룬궁을 ‘유물론, 무신론’과 대립시켰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다. 즉 ‘유신론’으로 삼아 반대한 것이다. 중공이 파룬궁을 탄압한 주요지도 문건인 ‘공산당원은 ‘파룬따파’ 수련을 하지 못하도록 할것에 관한 중공중앙 통지’에도  같은 입장을 밝혔다.

‘통지’의 제1부분에 “‘파룬궁’ 조직의 정치 본질과 엄중한 위해를 충분하게 인식하고, 공산당원은 ‘파룬따파’ 수련을 하지 못하도록 명확히 요구하라”고 강조했고, “‘유심주의, 유신론을 선양하는’ ‘파룬따파’는 ‘마르크스주의 기본 이론, 기본 원칙과 근본적으로 대립 된다. 공산당원으로서 반드시 “견정하게 마르크스주의를 신앙해야지 ‘파룬따파’를 신앙해서는 안 된다.” ,

 “공산당원의 근본 신앙에 관계되는 중대한 문제에서 모든 공산당원은 모두 입장이 견정해야 하고 정치 태도가 분명해야 한다. ‘파룬궁’ 조직의 정치 본질과 엄중한 위해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사상을 중앙 정신에 통일시켜야 한다.”[2] 라고 했다. 전반내용에 신앙만 언급하고 ‘불법적인 청원’ ‘불법적인 집회’ 등 ‘법률문제’를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근본적으로 신앙 문제를 겨냥한 것임을 설명한다.

3. 신앙을 징벌한 것이지 ‘위법 행위’가 아니다

2000년 청더(承德)에서 법제교육반(즉 ‘전향반’)을 조직할 때 관련 부문은 동원대회or동원 회의에서 명확하게 “‘도우미교육’상대가, 파룬궁 조직과 철저하게 경계선을 그으면, 정부는 관대하게 처리할 것’이며 무릇 목숨 걸고 완고하게 파룬궁을 견지하려는 입장을 보인 사람은 단호하게 법에 따라 처벌할 것이다”고 선포했다 [21].

때문에 징벌은, 파룬궁수련생이 임의의 ‘위법’ 행위를 해서가 아니라, 파룬궁에 대한 신앙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가히 알 수 있다.

. ‘전향률’은  정신적인 사망과 육체적인 사망 중에서 선택하도록 사람을 강요하는 것

1. 어떤 방법을 썼던 신앙 박탈은 박해

국제 여론을 속이기 위해 중국당국은 거액의 자금을 들여 전문 참관용으로 사용하는 ‘화원’감옥과 노동교도소[22]를 짓고 파룬궁수련생을 ‘양호한 교육’으로 ‘전향’시킨다고[23] 크게 떠들었지만 ‘전향’ 목적은 사람의 신앙을 박탈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양호한 교육’이든 아니면‘혹형고문’ 이든 바로 박해인 것이다. 중국대륙 감옥, 노동교도소에서 흘러나온 대량의 증거[부록1], 증언 [22]과 독립 매체 보도[19]에서 ‘전향’의 주요 수단은 폭력이라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중국당국은 ‘양호한 교육’을 해도 ‘전향률’ 임무를 완성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는가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지만, 정부측 보도에서 ‘전향률’ 지표를 완성해야 한다는 내용을 보아낼 수 있다. 최종적으로 반드시 인신 자유를 박탈하고 폭력과 육체 소멸을 하게 될 것이다.

2. ‘전향’은 인신자유를 박탈하는 조건에서 진행

‘봄바람은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라는 제목으로 쓴 문장에는 전 베이징에서 ‘파룬궁’ 수련자 에 대한 ‘교육전향’ 공작이 적지 않은 어려움에 봉착하고 좌절을 겪고 있을 때 ‘베이징시 노동교양공작관리국(아래 노교국이라 약칭함)은 감옥 안에서 우선 돌파구를 찾았다.’[23] 고 언급했다.

이 때문에 베이징 노교국은 사법부로부터 1등 공로상을 받았고 베이징 반 파룬궁 선진 단체[24]로 되었다.

파룬궁박해국제추적조직은, ‘돌파’는 우선 노동교양소에서 나타났으며 베이징 노교국 계통 직원이 베이징 각급 당과 정부관원, 정치공작 간부, 이론 공작자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한 것은 노동교양소 시스템 특징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대량의 증거에서 베이징과 전국 노동교양소 시스템은 불법적으로 감금한 파룬궁수련생에게 광범위하게 폭력과 고문[부록1]을 가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 방안을 처음으로 세우고 책임졌던 전임 베이징 노교국 국장 저우카이둥[25]은 거액의 뇌물을 받아 지금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26]

노동교양소 내에 있는 파룬궁수련생들은 인신자유를 완전히 상실하고 폭력적인 환경 속에 놓여있기 때문에 사회에 있는 파룬궁수련생에게 직접 적용할 길이 없었다. 그리하여 ‘베이징 노교국은 또 시위원회 지시에 따라 유능한 인재를 뽑아 사회에 나가는 형식으로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도우미교육’을 하여, 지방과 중앙의 관련 부문에서 조직한 법제 교육 양성반에 협조하게 했는데 성공을 거두었다.  베이징 법제 양성센터는 대규모 집중 세뇌반을 조직하는데 ‘소중한’ 현장 경험을 쌓았다. 집중적으로 세뇌반을 조직한 이런 형식은, 중앙 관련 부문과 시위원회의 인정을 받았으며 많은 ‘파룬궁’ 열성 수련자들을 ‘교육전향’시키는데 새로운 길을 열었다.

다시 말하면 법제 교육 양성반은 지방의 법률집행기관이 아닌 부문에서 설립한 모의 감옥,노동교 양소 환경 같은 ‘전향’ 장소다. 다롄시 시강구에서 제출한 ‘전향’ 방법은 ‘법제교육 학교를 통해 집중적이고 폐쇄식 ‘도우미교육’ 전향을 실시하여 전력을 다해 공격전을 강행한다.’[27]

‘전향률’을 어떻게 완성하는가? 제일 상습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여러 명이 한 사람을 공격하여 강제로 ‘세뇌’하는 것이다. 일찍이 1999년 8월 중앙의 ‘양판 통지’에는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책임지고, 몇 사람이 한 사람을 책임지는 방법을 취하라”[4]고 언급했다.

중앙 ‘610 사무실’의 인정을 받은, 창춘시 뤼위안(綠園)구 춘청(春城) 주민 센터 사무처에서 실행한 방법은“주민 센터 간부, 일반 간부, 단지 주임, 공안 경찰, 가족, 직장에서 각각 ‘파룬궁’ 수련자 한명을 책임지는 ‘6위 1체’를 보증하는 책임제”[28]이다.

지린성 퉁화(通化) 강철그룹 반스(板石) 광업공사는 20명으로 구성된 ‘도우미교육팀’이 한사람을 ‘도우미교육’한‘최고’[29]’도우미교육(幫教)’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3. 전향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박해 격상

베이징시 펑타이(豐臺)구 팡장(方莊) 지역은“아직 ‘전향’하지 않은 31명의 ‘파룬궁’ 중점인물 중에서 노동교양소에 간 사람을 제외한 15명을 ‘전향’ 학습반에 보내고, 각급 조직으로 구성된 4명이 ‘전향’을시켰는데 ‘전향률’이 100%였다.”[30]

노동교양소에 보낸 인원은 분명히 현지 ‘전향률’에 넣어 계산하는 숫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실적을 올리기 위해 과장된 요소 이외에, 이 100% ‘전향률’은 ‘전향’하지 않은 12명을 노동교도소에 보내고 나서야 완성한 것이다. 베이징 쉬안우(宣武)구 광네이(廣內) 주민 센터는 2002년 종합관리공작 총결에서 유사한 묘사를 했다. “광네이 지역에 등록된 ‘파룬궁’ 수련자는 이미 전부 ‘전향’ 됐다. ‘전향률’은 99%다.”(원래 보고는 이러했는데 전부가 왜 99%인지 모름) 하지만 ‘감금된 인원’(원래 보고에는 해석이 없지만 마땅히 구류, 노동교양과 판결 받은 사람을 포함해야 할 것이다.)을 제외한 것이다.[31]

난징 치샤마췬(棲霞馬群) 주민센터가 말한 100% ‘사회를 향한 전향률’은 아직 ‘전향’하지 않은 파룬궁수련생을 판결한 후 완성한 것이다.[16] 중국 정치 생활 속에는 운행 시스템이 있는데 ‘모순 상납’이라고 한다. 각종 ‘전향반’은 상급 지도자 부문이 협조하여 조직하는 경우가 많다. 상급에서 내린‘전향률’ 지표를 완성 혹은 초과 완성하여 상여금을 받거나 벌을 받지 않기 위해 하부조직에서는 ‘전향’하지 않은 파룬궁수련생을 강제로 ‘전향반’이나 ‘노동교양소’에 보내 자기몸에 가해진 압력을 완화하는 상투적인 조작 방법을 썼다.

2001년 1월 17일 헤이룽장성 칭안(慶安)현 파룬궁수련생 류옌(劉巖)은 붙잡혀 혹독하게 구타당하고 1년 6개월 노동교양  결정을 받아 쑤이화(綏化) 노동교양소로 보내졌다. 류옌의 상처가 엄중했기 때문에 노동교양소에서 받지 않자 경찰은 인맥을 통해 강제로 그를 남겨두었다. 류옌은 2002년 7월 21일 박해 받아 사망했다.[32]

산둥 라이우(萊蕪)시 시위서기 리위메이(李玉妹)는 신체검사에서 노동교양 할 수 없는 일부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주요 관리기관에 압력을 가하고 예물을 주는 방법으로 받게 했다.[33] 2001년 1월 12일 산둥 라이우 파룬궁수련생 왕후이(王慧)가 왕촌 노동교양소에 보내졌을 때 받지 않자, 경찰 쑤궈졘(蘇國建)은 그의 동창생 관계를 이용하여 뇌물을 주고 그녀를 지난(濟 南) 노동교양소에[33] 보냈다.

인맥을 통해 뇌물을 주고 사람을 노동교양소에 보내는 이런 일은,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박해에서 상당히 보편적인 현상이다.

4. ‘전향률’을 완성하기 위해 고문을 가하다

‘전향반’, 노동교양소와 감옥은 마찬가지로 ‘전향’ 지표[8]가 있기 때문에 예를 들어 선전(深圳)시 사법국에서 제출한 ‘10,5’기간 “‘파룬궁’ 유형의 전향률을 교도관은 80% 이상 유지해야 했다.”[34]

‘전향률’ 지표를 완성하기 위해 이런 부문도 예외 없이 광범위하게 고문[부록1]을 가했다. (매일 대량의 고문에 관한 사례가 보도됨 www.minghui.ca,www.faluninfo.net,www.clearwisdom.net를 참고하기 바람)

산둥 웨이팡 수련생 장량(張亮)은 ‘세뇌반’에서 일종 ‘아오잉(熬鹰: 잠을 자지 못하게 하는 고문)’ 혹형고문을 받았다. 연속 1개월 넘도록 24시간 앉지 못하게 하고 벌을 서게 했다. 잠을 자지 못하게 하면서 한 무리 사람들이 번갈아 가며 부르고 외쳤으며 수도 없이 때리고 밀치고 했다. 그는 잠을 자지 못해 정신이 마비되고 방향을 가리지 못했으며 두 다리는 사람을 놀라게 할 정도로 부었다. 피부가 투명하고 하얗게 되었으며 수시로 터질 것 같았다. 종아리는 허벅지 굵기와 같았고 두 발은 신을 신을 수 없었다. 시멘트 바닥에 맨발로 서 있게 하여 마지막엔 서 있을 수 없었으며 한 걸음도 걸을 수 없었고 이리저리 쓰러져 몇 번이나 벽에 부딪치고 바닥에 넘어졌다.[35]

광둥 싼수이(三水) 노동교양소는 강제로 파룬궁수련생을 감금하고 신앙을 포기하게 했다. 고문하는 방을 만들고 파룬궁수련생의 사지를 힘껏 4개 방향으로 당겨 묶는 ‘오마분시(五馬分屍)’라는 고문을 사용했다. 2003년1월2일  노동교양소 교도관 장우쥔(張武軍)은 수갑 2개로 파룬궁수련생 황주펑(黃柱峰)의 두 손을 채우고 죄수들을 시켜 힘껏 양쪽으로 당기게 해 황주펑의 두 손이 피범벅이 되었으며 좌우 어깨가 빠졌고 28일 후 팔 근육이 위축되었다.[36]

베이징 사법 행정 사이트는 베이징 여자 노동교도소 제4대대 대대장 리지룽(李繼榮)이 파룬궁수련생 두(杜)씨를 ‘전향’시킨 사실을 보도했다. 리지룽이 어떻게 ‘간고하고 세심하게 사상 교육’을 했는가를 묘사한 후 “16일 동안 밤낮으로 계속된 공작을 통해 두씨는 ‘결별서’를 썼다...”[37]고 보도했다.

이 ‘결별서’는 연속 16일 잠을 자지 못하게 한(다른 고문을 포함하지 않음) 정황에서 쓴 것임을 설명한다. 베이징, 퇀허(團河), 신안(新安, 여자 노동교양소) 교양소에서 혹형 고문을 받은 아일랜드 삼성학원 학생 자오밍(趙明)은 다음과 같이 썼다.

“노교소에서 만기 2주 전 그들은 끝내 손을 썼다. 먼저 나에게 이틀 잠을 자지 못하게 하고...다음  그날 저녁 장하이촨(姜海泉)은 능청스럽게 나에게 텔레비전을 보라고 했다. 한참 보고 있는데 장하이촨이 갑자기 뛰어들어 와 ‘장(蔣)과장이 당신과 얘기 나누겠답니다.’고 말하고 재빨리 나를 사무실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니 아주 작은 사무실 바닥에 침대판이 있었다. 위에는 찢어진 끈이 가득했고 방에는 관리과 과장 장원라이, 교육과 과장 양펑화, 교육과 부과장 장하이촨과 ‘공격반’ 경찰 두목 류궈시와 류신청 등 경찰 다섯 명이 서있었다. 나는 그들이 전기방망이로 본격적으로 나를 고문할 것임을 알았다. 장원라이는 ‘당신은 무슨 일로 소장을 찾았어? 이것이 바로 당신이 소장을 찾은 결과다.’고 말했다. 그들은 먼저 나에게 ‘전향’하라고 위협했다. 내가 엄격하게 거절하자 그들은 나를 침대판에 묶었다. 이는 전기 고문할 때 신체가 떨려 움직이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발, 다리, 윗몸, 팔을 각기 묶고 끈 한쪽은 나의 입을 지나게 머리를 묶었다. 묶은 후 그들은 재차 나를 ‘전향’하라고 위협했다. 내가 재차 거절하자 그들은 전기 곤봉 한 묶음을 안고 나와 전기곤봉을 각자에게 나눠줬다. 그 전기곤봉은 50센티미터나 되었는데, 머리에 전극 2개 있는 이외 전기곤봉 전체에 나선형 금속을 둘렀다. 이 부분으로 전기를 방출하면 더 큰 범위로 충격을 가할 수 있었다. 그들은 적어도 6개 전기곤봉으로 나의 전신을 충격하기 시작했다.

나의 신체는 격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가끔 멈추고 계속 나에게 서명하라고 위협하면서 이른바 ‘전향’을  하라고 했다. 경찰 류궈시는 동작이 극히 숙련되어 두 손에 각각 전기곤봉 하나를 들고 평형을 잡고  나의 흉부에 붙어 빙빙 돌리며 이동하면서 전기곤봉에 두른 금속이 전기를 방출하게 했다. 나의 윗몸은 전기에 마비되어 떨렸고 호흡이 급박해지고 목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았다. 나는 나의 입 위를 지나간 띠를 꽉 물고 가쁜 숨을 쉬면서 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 나의 귀에는 온통 전기곤봉에서 튀기는 ‘팍팍’하는 소리만 들렸다. 한참 지나 나의 한 쪽 다리는 경련이 일어났고 극심하게 아팠다. 나는 방안의 공기가 더 이상 공기가 아니라 모든 공기 미립자에 모두 폭력과 사악으로 넘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는 이런  극대한 정신자극 때문에 그야말로 더 이상 명석할 수 없었고 이지를 유지할 수 없었다. 그들은 내가 그들이 요구한 이른바 ‘전향’에 동의하기 전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날은 2002년 3월 27일이다. 나는 진실하게, 이 사악한 깡패 정치집단의 가장 사악한 정신적 강간 수단을 체험했다.”[38]

지금 미국 뉴저지주에 거주하고 있는 파룬궁수련생 천강(陳剛)은 파룬궁 수련을 이유로 1년 6개월의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다. 퇀허 노동교양소에서 교도관은 매일 그에게 2-4시간의 수면 시간밖에 주지 않았다. 한 번은 그들이 연속 15일간 그를 잠을 자지 못하게 하려고 그가 눈을 감기만 하면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찼다. 교도관은 또 고압 전기곤봉 몇 개로 동시에 그의 신체, 머리, 목, 흉부 등 민감한 부위를 충격했는데 전기 충격한 곳의 피부는 시커멓게 탔으며 온몸은 맹렬하게 떨렸다. “온몸  신체는 마치 불에 굽는 것 같았고 독사에 물린 것 같았다.”[39]

한 번은 교도관이 같은 방에 있는 10여 명의 죄수에게 그를  때리라고 꼬드겨 그의 얼굴이 변형되

었고, 그의 발과 다리를 꽁꽁 한데 묶고 두 팔을 뒤로 묶은 다음 그의 목과 다리를 한데 묶어 하마터면 질식할번했다. 그리고 그를 침대 밑에 넣고 침대판 위에 사람이 앉아 힘껏 그의 등을 눌렀다. 그때 그는 뼈가 다 부러지는 것 같았고, 그 후 2주 동안 걸음을 걷지 못했다. 이런 고문으로 그는 거의 반신불수가 될 번했고(다른 한 루창쥔(魯長軍)이라 부르는 수련생은 이런 고문을 받아 반신불수가 되었음) 정신이 붕괴될 직전에까지 갔다.[39]

천강은 신체가 계속 감당할 수 없는 참혹한 학대 때문에 마음을 어기고 굴복했으며 이는 그의 자존심과 자신감을 훼멸시켰다. 천강은 당시 박해 받았던 진실한 심태를 말했다. “나는 그때 괴로움을 당해 죽음의 변두리에 처했기 때문에 사망과 굴복 중에서 선택을 해야 했다. 굴복은 자신의 인격과 신앙을 배반해야 하는 것인데 이로 인한 고통은 나 자신이 사망하는 고통보다 심했다. 사람이 죽음 앞에서 흔히 모두 공포와 고통을 느끼지만 굴복을 선택하고 살았을 때 그 시달림은 정말 죽음을 선택하기보다 못하다. 당신의 인격이 능욕을 당하고, 영혼이 더는 순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때 감각은 정말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못하다.”[39]

5. 집단학살:‘전향’은 정신적 사망, ‘전향’하지 않으면 육체적 사망

2004년 4월 30일까지 파룬따파 밍후이왕(明慧網)의 확인을 거쳐 발표한, 박해 받아 사망한 파룬궁수련생은 958명[40]이다.

광의적으로 말하면 박해 받아 사망한 원인은 모두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헤이룽장, 지린, 랴오닝, 산둥, 허베이 5개 성에 대한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5개성에서 박해 받아 사망한 파룬궁수련생은 588명이다. 그 중 직접적인 사망 원인은 ‘전향을 거절’ 한 것으로 사망한 수련생이232명 에 달해 약 40%를 차지했다. 이 232명 중 213명은 혹형 고문으로 사망해 사망 비율의91.8%를 차지했고 55명은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하는 고문박해로 사망했는데, 무려 23.7%를 차지했고, 기타 원인으로 (예를 들면 건물에서 떨어 뜨리거나 약물 주사, 농약 주입 등)사망한 사람은 32명으로13.8% [41]를 차지했다. (설명: 강제로 음식물 주입했거나 다른 원인으로 사망한 파룬궁수련생 대부분은 동시에 고문을 받아 사망했기 때문에 사망원인을 완전하게 가를 수 없어, 계산할 때 중복이 있을 수 있음)

‘전향률’100%에 대한 요구는, 사실 모든 파룬궁수련생을 강박해 신앙을 포기하게 하거나 박해를 무한정 으로 강화하는 사이에서 선택하도록 하는것이다. 견정한 수련자로 놓고 말하면, 전자는 정신 사망을 의미하고, 후자는 아주 가능하게 육체적 사망을 초래할 수 있다. 무릇 어느 측면에서 보든 모두 장쩌민 집단이 의도적으로 파룬궁 단체를 소멸하기 위한 것임을 증명한다.

. ‘전향률’은 장쩌민이 국가기관을 통제하여, 각 급 당, 정 주요책임자들이 박해에 참여하도록 협박한 주요수단

1. 지도자 책임제, 한 표 거부권제도와 지도자 책임추궁제도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전향'은 최고위층에서 지시한 것이며 각 부와 위원회(조)와 행정부문(부분) 을 통해 줄곧 말단 주민 센터, 골목, 노교소, 감옥까지 철저히 실행되었다. '전향률'은 중앙 최고위층 박해명령이 감옥, 노교소, '전향반'에서 고문과 사망률을 초래한 주요 요소로 되게 했다. 당, 정 계통에서 실시한 박해에 각 급 당, 정 주요 지도자와 각급 정치법률 위원회 책임자는 이에 책임을 져야 했다.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제105조에는 ‘지방 각급 인민 정부는 지방 각급 국가권력기관의 집행기관 이자 지방각급 국가 행정기관이다. 지방 각급인민정부는 성장, 시장, 현장, 구장, 향장, 진장 책임 제를 실시한다.[42]’고 규정했다.

당내에서 파룬궁탄압을 책임진 것은 각급 당위원회 주요성원으로 구성된 '파룬궁 문제처리 지도 소조' 및 그 상설기구인 '610 사무실'이고 구체적으로 집행하는 것은 각급 '사회치안종합관리 위원회'와 '정법 위원회'[43]이다.

중앙 파룬궁문제처리 지도소조의 주요책임자이며, 장쩌민의 파룬궁 박해 주요 집행자인 뤄간은 '중앙사회치안종합관리위원회'와 '중앙정치법률위원회'주임을 동시에 겸임했고[44] 각급 '610사무실'은 '정치법률위원회'[43] 산하에 설립되었다.

2001년 뤄간이 전국 사회치안종합관리업무 회의에서 사회치안종합관리업무를 총결할 때 특별히 “각 급 당위원회의 통일된 지도와 관련된 부문의 협조 하에, 하부 역량을 조직하여 '파룬궁'과 투쟁을 진행 했기에 대량의 '파룬궁'에 매혹된 사람들을 교육, 구제, '전향'시켰다”고 말했다. 파룬궁을 박해할 때 늘 인용하는 말이 '사회치안종합관리 지도자 책임제'('지도자 책임제'라고 약칭)와 한 표 거부권제도 및 지도자 책임추궁제도[45]이다.

2. 권력과 책임: , 정 지도자들이 직권 범위 내에서 발생한 고문학살에 마땅히 짊어져야 할 법률책임

파룬궁 수련자 '전향'에서 닝샤(宁夏) 당위원회와 정부는 당, 정 '최고 책임자'를 제1책임자로 만들고, 분담 관리하는 지도자를 직접책임자로 만드는 지도자 책임추궁제도를 세워, 각 급 지도 간부들이 모두 책임을 지게 했다. 누가 교육'전향'업무와 관리를 소홀히 했다면, 누가 책임추궁 [12] 을 당하게 된다.

허페이(合肥)시에서 정식으로 시행한 '파룬궁 공작 지도자책임제에 관한 규정'에서는 '누가 주관했으면 누가 책임져야 한다.'고 명확히 규정했다.

무릇 연공자가 소속된 직장의 책임자는 관련된 모든 책임서에 서명해야 하는데, 만약 문제가 생기면 소속된 직장 지도자가 직접 책임져야 하고 소속된 직장의 상급 지도자가 연대 책임[46]을 져야 한다.

베이징 노동교양공작관리국(아래 노교국이라 약칭함)에서 실행한 것은 '최고 책임자'가 제1책임을 져야하고 층층이 아래로 내려가면서 지도자 책임과 직무책임을 지는 것인데 한 층이 아래 한 층을 책임지면서 층층이 실행해내려가는 것이었다.[24]

층층이 '전향률'과 대응되는 책임제 실행을 통해 장쩌민은 각 급 당, 정 주요책임자와 정법 관원들 을 그의 탄압체계의 하나하나의 고리로 만들어 버렸다. 다른 각도에서 볼 때 이것은 바로 왜 그런 관원, 특히 미친듯이 주동적으로 박해를 추진한 사람들이 그들 권한 범위 내에서 발생한 고문학 살에 대해, 반드시 법률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전향률'은 각급 정부의 정치 업적으로서 상급기관으로부터 표창을 받는다.

위에서 서술한 ‘지도자 책임제’, ‘한 표 거부권 제도’등 징벌 조치이외에 정책을 제정하여 각 급 관원들이 박해에 참여하도록 격려하기도 하는데 그 중의 주요한 형식은 바로 각 급, 각 부문에서 ‘표창대회’를 여는 것이다. 2001년 2월 26일, 전국 사법행정계통에서는 '전향'업무 선진표창대회를 열었다. 표창을 받은 단체는 랴오닝 마싼자(馬三家)교양원, 베이징 노교국, 지린성 여자노교소, 후베이성 사양(沙洋) 노동교양소 등 이다. 표창을 받은 개인은 마싼자 노동교양원 여2소 소장 수징(蘇境 )[47] 등이다.

대량의 증거가 표명하다시피 이러한 부문과 개인이 모두 적극적으로 고문을 사용하여 파룬궁 수련생을 학살 [부록 1]했다.

2001년 3월 14일, 랴오닝성 사법행정계통 교육전향업무총결 표창대회가 선양에서 열렸다. 표창 받은 부문은 성 마싼자 노동교양원 여2소(사상교육 '전향'업무 모범부문), 선양시 장스(張士) 노동교양원 등5개 부문(단체 2등공), 안산시 노동교양원 등 4개 부문(교육'전향' 업무 선진 단체), 푸순시 노동교양원 원장 황웨이(黃煒) 등(1등공), 선양시 장스 노동교양원 부원장 청뎬쿤(程殿坤) 등 18명(2등공), 선양시 사법국 노동교양 교도처 처장 리룽천(李榮琛) 등 55명(사상교육 '전향'업무 선진 개인), 마싼자 노동교양원 여소 소장 양졘(楊健) 등 14명(3등공)[48]이다. 이런 부문과 개인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한 증거는 부록을 참조하기 바란다.

2001년 베이징 사법계통은 ‘인민이 만족하는 정치법률 경찰’ 모범 4명을 표창했는데 그 중 3명 은 적극적으로 파룬궁수련생을 '전향'시켜 수상한 것이다. 표창받은 모범은 현임 베이징 미성년 죄수 교도소 4감시구역 구역장 겸 9분 감시구역 구역장인 황칭화 (黃清華, 여 42세), 베이징 노교국 여자 노동교양소 4대 대대장인 리지룽, 베이징감옥 6감시구역 구역장 리광싱(왕즈원, 지레우, 주커밍, 리창 등의 박해를 주관했다.)이다.[49]

황칭화는 야요제, 텅춘옌 등을 '전향'시켜 표창 받았고, 시 정치법률계통의 ‘우수공산당원’이며 ‘전국 사법행정계통 선진 공작자’이고 베이징 감옥 관리국의 ‘인민이 만족하는 정치법률 경찰’이고 베이징 ‘인민이 만족하는 정치법률 경찰모범’이며 개인 1등공을 기록했다.

리지룽은 전국 노동교양계통에서 유일하게 16대 인민대표대회 대표로 되었고, 전국 및 베이징의 '파룬궁'과 투쟁한 선진 개인으로 되었고 ‘전국사법계통 2급 영웅모범’, ‘전국5.1노동메달’을 받았다.

기타 '전향' 공작을 하여 표창 받은 부문과 개인은 베이징여자(신안)노동교양소, 광둥성 부녀노동 교양소의 정치법률위원 세쑤훙(사법부 교육 '전향'공작 선진 개인 2등공), 후베이성 사양노동교 양소 9대대 부 대대장 어우양다이샤(제2기 후베이성 10대 걸출한 청년 호위병, 전국‘5.1’노동메달, 전국 사법 행정계통 교육 '전향'공작 선진 개인, 2급 영웅모범) 등이다.

[주: 여기에서 다만 몇 가지만 예를 들었을 뿐 상세한 자료를 보려면 파룬궁박해추적 국제조직과 연 계 하기 바람.) 이러한 표창대회는 각 성시에서 해마다 모두 열린다. 이렇게 대규모적으로 ‘진(眞)선(善)인(忍)’ 을 수련하고 좋은 사람이 되려는 사람을 박해함으로써 사회적으로는 점차 악을 장려하고 선을 징벌 하는 풍조가 일게 되었다.]

. '전향률'은 박해를 사회 구석구석까지 깊이 파고들게 했다

1. , , , (공산당, 정부, 노동자 조합, 중국 공산주의 청년단의 합칭)에서 '전향'에 참여

각 급 당, 정 기구는 사회에서 '전향'을 진행하는 주요 집행기관이다. 지린성위 서기 왕윈쿤, 성장 훙후, 성위 부서기 천위제, 전임 성위 부서기 쑤룽은 모두 직접 '몇 명이 한 명'을 '전향시키는' 공작 [50]에 참여했다.

베이징 차오양구에서는 720개 ‘도우미교육’팀을 세웠는데 962명 당원이 ‘도우미교육’지원자 팀에 참가했고, 5,000여 명 지역사회 간부와 아파트동 조장들이 ‘도우미교육’공작[51]에 참여했다.

한편 감옥과 노동교양소는 '전향'을 실행하는 가장 주요한 장소이다. 이 밖에 기업[52,53], 부녀연합 [54], 공청단[55], 과학계[56], 이론계(특별조사보고를 할 것임), 교육계[57] 역시 중앙의 통일적인 배치 하에 여러 가지 방식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고 '전향'하는 공작에 모두 참여했다.

2.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세뇌반'

‘전향’방식 중에서 주목할 점은 바로 여러 가지 명목으로 열리는 ‘전향반’(‘세뇌반’)이다. 이런 ‘전향반’을 흔히 ‘법제교육학교’, ‘법제교육센터’, ‘법제교육학습반’, ‘법제교육훈련센터’, ‘교육전 향학습반’, ‘관심교육센터’라고 부른다. 주최 기관은 성 정치법률위원회, ‘610사무실’[58]에서 지 역 부녀연합회[54]에 이르기까지다. 중앙기관[59]에서부터 가도(街道) 거주위원회[31]까지 포함되지 않은 곳이 없다. 무엇이라 부르든 그것의 공통된 특징은, 학습반에 잡혀간 파룬궁수련생은 강제로 인신자유를 잃게 되고, 학습반의 진행과정은 어떠한 법률적인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았으며 ‘전향반’ 은 어느 행정기관, 사법기관, 사회단체에도 소속되지 않는다는 점이다.(비록 가끔은 정부기관의 이름을 내걸고 진행하기도 하지만)

어떠한 등록도 하지 않고, 그것의 성질, 지위를 확인해 줄만한 어떠한 법률적인 조문이나 공개적인 당, 정 문건도 없으며, 어떠한 기구의 감독도 받지 않는다. 어떠한 법률문서도 필요 없이 모든 사람을 구금할 권리가 있는데, 공작원들은 어떠한 법 집행자의 신분도 없지만 법 집행자를 초월하는 권리를 갖고 있으며, 사람을 때려죽여도 법률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것의 비합법성과 잔혹함은 심지어 문화대혁명시기의 ‘격리심사’와 ‘마오쩌둥 사상 학습반’을 능가한다. 많은 ‘전향반’은 ‘610사무실’에서 책임지지만 ‘610’사무실 자체가 바로 아무런 법률적 기반이 없고 법집행권한[43]이 없다. 2001년 이전, 10개월 동안 베이징 차오양구 한 곳만 해도 200몇 기 '전향반'을 꾸렸다.[60]

‘전향반’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고문과 혹형으로 박해받아 사망한 일부분 사례는 부록 2와 부록 3을 참조하기 바란다. 여기에서 한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고자 한다.

밍후이왕  2002년  2월 5일 보도에 따르면 후베이 스옌 (十堰) 사람인 딩원(丁文 , 남, 30세 전후)은 후베이성 스옌시 장완구 ‘세뇌반’에 불법감금되어 2002년 1월 14일에 박해로 사망했다. 경찰은 소식을 봉쇄하고 내막을 아는 사람들을 협박하여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하게 했다. 딩원은 불법적으로 감금된 사이에 여러번 잔혹한 구타를 당했고, 2001년 겨울 몹시 추운 날씨에도 핍박으로 엎드려 팔 굽혀펴기, 달리기, 군대자세로 서있게 하는 박해를 당해 매일 위 통증과 구토를 하는 등 심한 시달림을 받았다. 2001년 2월 19일 단식기간에 '세뇌반' 옌쥐둥, 샤바오중, 장완 공안분국 민톈샹의 지휘 하에 부하 황청쥔, 푸보안은 남자 파룬궁수련생들을 2층으로 끌고 가 화장실에 가두고 구타했다. 발로 파룬궁수련생 배를 걷어찼는데 딩원은 맞아 위출혈이 생겼고 60세 되는 리궈윈(李國運)은 맞아 혈뇨가 봤으며, 다른 한 파룬궁수련생은 맞아 흉부 연조직이 손상됐다. 게다가 저녁에도 그들을 자지 못하게 하면서 화장실 수도관에 쇠고랑으로 채우고, 만 이틀 동안 그들을 괴롭혔다. 2001년 3 월 말, 딩원은 다시 구타당했고 창틀에  맞혀 어쩔 수 없이 창문으로 뛰어내려 피하려다 허리를 심하게 다쳐 다시 직장으로 돌려보내졌다. 8월 말, 아직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딩원은 고향에 돌아와 휴양을 했는데 훙워이지역의 경찰들은 다시 그를 고향 ‘세뇌반’에 붙잡아 넣었다. 9월 말 딩원은 같은 숙소에 있는 다른 파룬궁수련생과 함께 나갔는데 ‘세뇌반’ 졸개들은 원룸에서 딩원에게 혹형을 가하며 자백을 강요했다. ‘보검을 짊어진 모양(背宝剑)’, 구타, 억지로 술을 부어 넣고 취하게 한 다음, 다시 식초를 부어 넣으면서 연속 5일 동안 괴롭혔다. 그런 다음 다시 간수소(看守所)로 보냈고 한 달 뒤 다시 ‘세뇌반’에 가두었다. 2002년 1월 14일 딩원은 박해당해 세상을 떠났으며, 딩원의 아내 천룽메이(陳容梅)는 아직도 제2자동차 공장 '세뇌반'에 갇혀있다.[61]

3. ‘세뇌반’은 정부관원이 협박으로 재물을 갈취하는 개인 도구

베이징 부녀연합회 주석이자 시 정치협상위원회 위원인 우슈핑이 밝힌 바에 의하면, 정부는 또 납세자의 세금을 ‘전향’에 사용하려 했다. 파룬궁수련생 한 명을 ‘전향’시키는데 사용한 비용은 5,000~6,000위안에 달한다.[62]

세뇌반에 끌려간 파룬궁수련생의 가족과 그들이 다니던 직장에서도 고액의 생활비와 ‘전향’비용 을 내야 했다.[63]

산둥성 자오저우(膠州)시 ‘610세뇌기지’ 인 장자툰(張家屯)은 감금된 파룬궁수련생들에게 1인당 매일 50위안의 ‘생활비’를 내라고 강요했고, 또 많은 사람은 협박에 의해 추가로 3,000위안에서 만 위안의 돈을 강탈당했다. 이 ‘세뇌기지’에서 이미 2명의 파룬궁수련생이 박해당해 사망했고, 여러 사람이 박해 받아 불구가 되었는데도, 산둥성 ‘선진기관’으로 선정 되었다. [64]

란저우시 궁자완(龔家灣) ‘세뇌반’은 감금된 파룬궁수련생들을 협박해 일인당 매월 4,000위안을 강탈했고, 2003년 11월 신진(新津)에 위치한 ‘세뇌반’(즉 ‘청두법제학교’)은 500여명의 파룬궁수련생을 불법 감금하여 소속 직장이 스스로 본 직장의 수련생을 “도우미교육”하도록 하고, 파룬궁수련생이 그 ‘도우미교육’을 책임진 자의 생활비용을 부담하게 했다.[65]

다칭시 정부, 다칭유전유한공사와 다칭 석유관리국 3곳에서 주관한 다칭시 훙워이싱 ‘세뇌반’ (다칭시 법제교육학교)은 24시간 전면 폐쇄관리를 실시했다. 납치된 파룬궁수련생의 직장에서 5,000 위안의 관리비를 내게 하고, 개인은 1,200위안 식비를 내게 했다. 내지 않으면 봉급에서 공제했다. [66]

시안시 ‘세뇌’기지는 시안시 창안구의 시안노동자요양원 앞의 종합청사에 있었다. 시안시위 ‘610’은 여기에서 1년에 ‘세뇌반’을 3번 조직했다. ‘세뇌반’은 파룬궁 수련생과 ‘도우미교육’인원으로부터 매일 30위안의 숙박비를 받았는데, 파룬궁수련생은 본인의 숙박비 이외에 ‘도우미교육’인원의 3개월 동안의 숙박비도 부담해야 했다. 이런 ‘도우미교육 인원’과 ‘610’인원들은 공짜로 먹고 잘뿐만 아니라 직장이 있는 사람은 월급과 상여금까지 받는다. 그 밖에 ‘610’은 매일 그들에게 1인당 35위안의 보조금을 준 다. 다시 말해 3개월 동안 이런 ‘도우미교육’인원과 ‘610’인원은 별도로 3,000위안의 돈을 벌수 있다. ‘610’조직은 이렇게 백성들이 피땀으로 번 돈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다. ‘도우미교육 인원’과 ‘세뇌반’인원은 금전 유혹이 있기 때문에 ‘610’의 말을 잘 따랐으며 파룬궁 박해에서도 전력을 다 했다.[67]

4. 하층 연좌제

이런 ‘전향’은 또 경제적인 징벌 수단을 포함해 하부조직원을 협박하여 박해에 참여하게 했다. 난징 샤관웨장러우(下關閱江樓) 주민센터는 파룬궁수련생의 직장 지도자와 지역 주민 주임과 ‘지도자 책임서’를 체결하고, 이 두 책임자에게 위험보증금을 내라고 했다. 직장책임자는 200위안, 지역 주임은 100위안의 위험보증금을 내고 연말에 교육 목표를 달성하면 위험 보증금을 돌려줄 뿐만 아니라 주민센터에서 두 배로 상여금을 책임자에게 주고, 임무를 완성하지 못하면 보증금을 몰수할 뿐만 아니라 또 통보하여 비평하고 책임을 추궁한다. 지역 주민 주임은 연말 상여금에서 일부분 상여금을 공제한다.[68]

. 가정과 사회에 증오와 원한을 선전하고 선동하여 ‘전향’ 환경의 압력을 만들어 내다

1. 이웃, 친구의 압력

파룬궁수련생에게 ‘전향’ 압력을 조성하기 위해 허베이성의 많은 지역은 무릇 가족이 파룬궁 수련에 참여하고 제때에 그와 경계선을 긋지 않은 농가는 일률로 ‘신풍성(新风星)’, ‘수법성(守法星)’과 ‘과기성(科技星)’ 평가에 참여시키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어떤 지역에서는 ‘한 표 부결제도’를 실시하여 가족 중 파룬궁 수련자가 있고 아울러 ‘전향’이 늦은 농가는 잠시 평가 참여 자격을 중단했다.[69]

이웃 간의 여론을 통해 파룬궁수련생의 가정에 압력을 가했다. 허베성 롼핑현에서는 친지, 동료, 동창, 친구와 지역 경찰을 동원하여 책임진 사람이 가서 파룬궁수련생을 ‘전향’시키게 했다. ‘한 번에 안 되면 두 번, 세 번, 수십 번에 달하기도 했다.’[70]

더 심한 것은 ‘전국 문명풍경 관광지’인 청더시 피서산장 각 관광지에는 ‘파룬궁 수련자 진입금지’ 라는 큰 표시판을 세웠다.[69]

2. 인성에 반하는 ‘가정전향’

국무원 사교문제 방비처리 사무실(즉 중앙 ‘610 사무실’) 책임자 류징이 2001년 2월 27일에 국 무원 뉴스 사무실 기자 회견에서 든 한 사례가 이런 ‘전향’이 비인간적임을 증명한다. 산둥성의 한 여사가 ‘주동적’으로 자신의 남편을 마싼자 노동교양원에 보내, 교양원에서 자신의 남편을 “도와 주라”고 했다.[71]

또 다른 전형적인 사례는 중국 셰허(協和)의과대학기초소 조리연구원 린청타오(林澄濤)이다. 린청타오는 국가 ‘863’ 계획과 미국 중화의학기금 CMB 항목의 핵심연구원이었다. 1999년 7월 20일 이후 린청타오는 파룬궁수련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월급이 공제되고, 집을 몰수당했으며, 납치, 감금, ‘세뇌’와 폭력 학대를 당했으며 핍박에 의해 아내와 두 살 된 딸을 데리고 유리걸식했다. 2001년 9월 그는 베이징에서 또다시 공안에 납치되어 1년 6개월의 노동교양 처분을 받았다. 베이징 노동교양 파견부서에서 ‘진(眞), 선(善), 인(忍)’의 수련을 포기하는 ‘보증서’에 사인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며칠 동안 벌을 섰다.

그는 2001년 10월 베이징 퇀허노동교양소에 납치되어 갔다. 노교소 2대대에서 교도관은 린 청타오에게 체벌을 가하고 번갈아 ‘세뇌’하며 독방에 감금했으며, 30,000볼트의 고압 전기방망이로 장시간 전기 충격을 가하는 등 각종 고문을 가했지만 그를 도무지 굴복시킬 수 없었다. 2001년 말, 베이징 신안(여자)노동교양소에서 ‘세뇌’당한 린씨의 아내가 여자 노동교양소에서 편지를 보내 노동교양소 2대대 대장에게 그들이 여자교양소에서 쓴 전기고문, 체벌, 정신자극, 밤새우기 등 방법으로 남편 린을 협박하여 굴복하게 하라고 건의했다. 경찰은 린을 협박하여 아내의 편지를 반복하여 보게 했는데 린은 최종적으로 이런 자극과 타격을 견뎌내지 못하고 정신이상이 되었다.[72]

. 미국 국민 리샹춘에 대한 ‘전향’은 중공의 의식 형태 수출이다

1. 판결에 단 한마디도 파룬궁을 언급하지 않았다

캘리포니아주에 거주하고 있는 미국 시민권자 리샹춘(李祥春)은 2003년 1월 22일 미국에서 광저우 공항에 도착했는데 중국대륙 공안에게 붙잡혔다. 중국은 그가 텔레비전을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파룬궁 박해 진상을 알리려고 ‘계획’했다는 이유로, 3월 21일 그에게 3년 판결을 내리고 난징감옥에 감금했다. 리샹춘은 미국 국민이기에 중국의 ‘반사교법’은 그에 대해 적합하지 않는다. (이 보고는 ‘반사교법’ 자체의 불법성 문제를 언급하지 않음) 양저우시 중급인민법원(공소인: 검찰관 장징훙, 검찰관 보조 양춘궈, 심판장 황순샹, 심판원 위안장화, 심판원 조수 인샤오타오)이 적용한 죄명은 ‘방송텔레비전 시설 파괴죄’[73]이다.

주목할 점은 텔레비전을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파룬궁 박해 진상을 알리려고 ‘계획’했다고 ‘방송텔레비전 시설 파괴 죄’로 판결한 것은 인증, 물증을 기초로 판결하는 법률계로 놓고 보면 리샹춘의 ‘범행’은 성립될 수 없다. 하지만, 난징 감옥은 죄수를 이용하여 그를 구타했고 연공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게 했다. [74]

밍후이왕의 2004년 1월 21일 보도한, 상하이 주재 미국영사관과 미국무원에서 제공한 소식 총결에 따르면 리샹춘은 핍박으로 각종 ‘세뇌반’에 참가했다.

2. 징벌은 판결 내용과 무관하게 강박하여 ‘세뇌’하다

2003년 2월 10일에서12일, 3일 동안 그에게 파룬궁 및 파룬궁 창시인을 모함하는 동영상을 보도록 강박했고, 난징 감옥은 6월 27일 연속 리샹춘을 5개 ‘세뇌반’에 보내 그때마다 2시간씩 강제로 반 파룬궁 선전을 받아들이게 했다. 7월 8일부터 리가 ‘세뇌반’을 거부함으로써 한 무리 죄수들이 그를 폭력으로 땅에 쓰러뜨리고 강제로 계단에서 끌어내려 ‘세뇌반’에 끌고 갔다. 7월 9일 리가 재차 거절하자 또 폭력을 가해 강제로 ‘세뇌반’에 끌고 갔으며, 이로 인해 신체에 적어도 29곳에 상처를 입었는데 모두 상처자국이 컸다.

10월 난징 감옥은 8명의 죄수를 파견하여 매일 24시간 리샹춘을 감시하고 통제했으며, 그를 강

박하여 ‘파룬궁을 왜곡하고 모함한 텔레비전 영상’을 보게 하고, 그를 강박하여 자신이 죄가 있다고 말하게 하고, 그를 핍박하여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도록 하고, 이른바 ‘회개서’를 쓰도록 핍박했다. 11월과 12월 사이에 리샹춘은 거의 매일 여러 번 강제로 ‘세뇌’ 받았다. 특히 11월엔 감옥 측은 리샹춘에 대한 ‘세뇌’를 강화했다. 마약 판매로 종신형을 받은 죄수는 부추김을 받아 리샹춘을 욕하고 모욕했다. 감옥은 또 2개 감시 카메라를 설치해 리샹춘을 감시했다. 하나는 리샹춘의 감방에 설치했고 다른 하나는 리를 강박하여 ‘세뇌’ 동영상을 보게 하는 방에 설치했다. ‘세뇌반’은 단체 ‘세뇌반’과 개인 ‘세뇌반’ 두 종류로 나뉘며, 또 동영상을 보게 하는 ‘세뇌반’이 있었다.

3. 중공이 미국 국민 신앙에 대한 관할권

난징 감옥은 리샹춘을 면회하러 간 미국 영사관 관리에게 그들과 함께 리샹춘을 전향하자고 요구 했고[75]

아울러 갖은 방법으로 리샹춘의 연로하신 부모님을 이용하여 리샹춘을 ‘전향’시키려 했다. [76]

이런 ‘전향’은 판결할 때 고소된 ‘죄행’과 관계가 없을 뿐만 아니라 강제로 미국 국민의 신앙을 개변하려는 것도 중국 정부의 사법 관할권 범위를 초월했음이 분명하다. 이는 중국공산당이 실시한 의식형태 수출의 예증이다.

주: 중국의 현재 인권 상황과 사법 수요를 감안하고, 아울러 당사자의 안전을 위해 구체적인 정황 은 여기에서 보여줄 수 없다. 참고 문헌이 필요하거나 특수 수요가 있는 분은 직접 ‘파룬궁박해 추적국제조직’과 연계하기 바란다.

부록

부록1: 노동교양소에서 강제로 진행한 ‘세뇌’

부록2‘전향반’ 부분 박해 사례

부록3‘전향반’ 부분 사망 사례

http://www.zhuichaguoji.org/sites/default/files/record/2004/05/123-guan_yu_tong_guo_zhuan_hua_.pdf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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